배움과 기회는 모두 ‘현장’에 있다

축구선수 중에는 아버지가 선수였던 경우가 꽤 많다.

비단 축구선수가 아니더라도 직업 선택에 있어 부모의 영향을 받는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부모가 해당 분야에서 굉장한 성공을 거뒀을 경우 이를 뛰어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무리뉴에게도 그랬다.

무리뉴는 최고의 골키퍼였던 아버지처럼 축구선수로 살고 싶었지만 자신이 가진 능력의 한계치를 깨달았다.  그러나 무리뉴는 실패를 좌절이 아니라 터닝 포인트로 삼았다.

무리뉴는 10대의 나이에 일찌감치 축구 감독이라는 진로를 결정했던 순간을 이렇게 회고한다.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을때 바로 그지점에서 ‘동기’를 발견했다.  난 정말로 축구계의 거물이 되고 싶었다.  난 축구 코치나 감독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고 느꼈다. 그래서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작업을 사랑했다.  난 대학에 진학했고, 스포츠 과학을 배웠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열정이며 방법론 이다 .”

23살의 무리뉴는 어머니의 권유로 비즈니스 스쿨에 입학했으나 하루 만에 그만두고 나왔다.  그리고 자신이 바랐던 리스본 기술대학의 ISEF 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스포츠 과학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이론을 정립하기 위한 시기였다.

무리뉴는  “어머니에게 내가 축구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학업에 열중해야 했던 이유를 밝혔다.

그는 특히 스포츠 과학의 체력 파트와 심리 파트에 열중했는데  사람들의 감정이 경기력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부분에 강하게 심취했다.

물론 대학시절을 공부로만 보낸것은 아니다.  학교 동창인 주제 토레이루는 무리뉴가  수업이 없을 때는 아버지의 일을 도우러 갔고 대학 내 축구팀에서 선수로도 뛰었는데 굉장히 다재다능했다고 한다. 골키퍼도 보았고, 센터백, 중앙수비수나  미드필더로도 뛰었다 그는 뛰고 싶은 곳은 어디든 뛸 수 있었다. 그는 끝없는 에너지를 갖춘 사람 이었다. 라고

스포츠 과학 학위를 취득한 무리뉴는 이후 3년간  포르투갈 전역을 돌며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일했다.  그는 장애아동들도 스포츠를 배울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88년 본격적으로 축구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스코틀랜드 축구협회가 주관한 UEFA 코칭 라이선스 코스에 참가했다.  무리뉴가 지도자 라이선스를 따기위해 굳이 스코틀랜드까지 날아간 이유는 당시 포르투갈 이 유럽의 코칭 커리큘럼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스코틀랜드가 선진적인 축구 교육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터라 무리뉴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찾아온 수강생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 는 약 2년간 축구 지도자가 되기위한 실전 교육을 받는다.

무리뉴는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판단 라이선스 획득을 뒤로 미루고 고향 세투발로 돌아가 지도자 연수 첫 번째 코스를 마친뒤 일을 얻는다

비토리아 16세 이하 팀과 18세 이하 팀을 지휘하는 일을 맡았다.

무리뉴의 성과는 즉각적 이었다.  곧 1군팀 감독 마누엘 페르난데스는 유소년 팀 코치 무리뉴를 신임했다. 1988년 세투발에서 현역 은퇴한 페르난데스는 막 감독으로 부임한 참이었다.

그는 감독으로도  성공적인 시간을 보냈는데 에스트렐라 다 아마도라에서 클럽 역사상 첫 우승인 포르투갈컵 우승을 이뤘다. 그리고 이 우승 뒤에는 무리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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