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거슨 감독의 부진과 경질 위기
맷 버즈비 감독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퍼거슨 감독은 부임 직후부터 유소년팀 강화에 힘을 쓰는 한편 1987/1988 시즌부터 즉시 팀 성적을 향상시켜줄 수 있는 즉시 전력감 선수도 물색하고 나섰다.
그가 맨유 재임 초기에 영입한 가장 중요한 선수는 수비수 스티브 브루스였다.
노리치 시티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첼시와 토트넘의 관심을 받던 브루스는 맨유에서 영입제안이 들오왔다는 말을 듣고는 곧바로 맨유를 선택했다.
그 후로 브루스는 뛰어난 수비력에 더해 결정적인 순간마다 골을 터뜨리는 믿음직한 수비수로서 맨유의 수비를 이끌었다.
공겨 강화를 위해 데려온 브라이언 맥클레어는 자신의 맨유 입단 첫 시즌 만에 리그에서만 24골을 터뜨리며 맨유의 공격을 책임졌다.
두 선수를 포함한 기존 선수들의 활약 속에 맨유는 퍼거슨 감독이 처음으로 시즌 시작부터 지휘한 1987/1988 시즌 리버풀에 이어 리그 2위를 기록하며 퍼거슨 감독을 믿은 이사진의 기대에 보답하는 듯 했다.
리그를 2위로 마무리한 뒤 퍼거슨 감독은 맨유 유소년팀 출신으로 애킨슨 감독 시절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던 마크 휴즈를 재영입했다. 그는 휴즈의 능역에 강한 믿음이 있었고, 휴즈는 맨유에 복귀하자마자 그 시즌 팀내 최다 득점자가 되며 퍼거슨 감독의 맨유 재임 초기에 가장 중요한 공격수로서 활약했다.
브루스와 맥클레어, 휴즈에 더해서 퍼거슨 감독의 재임기간 초기에 맨유에 합류한 주요 선수들로는 이후 맨유에서 8년동안 활약한 뛰어난 윙어 리 샤프, 중원에서 활약을 펼쳤고 훗날 잉글랜드 대표팀 최초의 흑인주자이 되는 미드필더 폴 인스, 스티브 브루스와 함께 든든한 수비진을 구축했던 게리 팔리스터 등이 있었다.
그러나 3년여 동안 선수들을 영입하며 자신의 구상대로 팀을 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퍼거슨 감독은 리그에서 2위를 기록했던 바로 다음 시즌 다시 11위로 내려앉는 등 첫 3시즌 동안 무관에 그치며 영국 언론 및 팬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퍼거슨 감독의 전임자였던 섹스턴 감독과 애킨슨 감독에게 들이닥쳤던 경질 위기는 어김없이 퍼거슨 감독에게도 찾아왔다.
경질 압박을 받고 있던 퍼거슨 감독과 당시 잉글랜드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던 클러프 감독의 맞대결에서 그 경기의 유일한 골을 터뜨리며 퍼거슨 감독을 구한 선수는 맨유 유소년팀 출신의 공격수 마크 로빈스였다.
맨유 1군에서 4년간 뛰는 동안 그가 기록한 모든 골 중 가장 중요했던 그 골은 영국 언론으로부터 ‘퍼거슨을 구한 골’로 널리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상대가 아무리 클러프 감독의 노팅엄 포레스트라고 해도 FA 컵 3라운드를 통과했다는 사실만으로 경질설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포레스트를 꺾은 후 결국 그 시즌 FA 컵 결승전에 오른 맨유는 준결승전에서 앨런 파듀의 골로 리버풀을 꺽고 결승전에 올라온 크리스탈 팰리스와 양팀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대결을 펼쳤다.
맨유에게 패배는 곧 퍼거슨 감독의 경질이 확정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으며, 크리스탈 팰리스에게는 구단 역사상 최초의 메이저 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 중요한 순간에 크리스탈 팰리스를 이끌고 있던 감독은 맨유의 1970년대 레저드였던 스티브 코펠 감독 이었다.
첫 경기에서 연장까지 가는 혈전을 벌이고 3-3으로 승부를 내지 못해 5일 후에 재경기가 펼쳐졌고, 그날의 유일한 골은 후반 14분 크리스탈 팰리스의 왼쪽 측면을 뚫고 들어와 수팅을 날린 맨유 유소년팀 출신 수비수 리 마틴의 발끝에서 나왔다.
그날의 골은 마틴이 맨유에서 1군 선수로 조낸 6년 동안 그가 터뜨린 단 두 골 중의 하나였고, 그날 경기 이후 오늘날까지 영국 언론에서는 그 골을 또 하나의 ‘퍼거슨을 살린 골’ 이라고 부른다.
모든 스포츠에서는 항상 예상과 빛나가는 결과가 항상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