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기록의 시대가 열리다.

인간이 사냥을 해서 먹고 살때는  먹잇감보다 끈질기거나 더 빠르면 그만 이었다. 하지만 달리기가 하나의 스포츠로 굳어지자  다른 선수를 제치는 게 급선무가 되었다.  그 기준이 바로 기록이었다.

인간과 시간의 싸움의 시작된 것이다.  그 상징적인 사건이  곧  “인간의 1마일 4분 벽 돌파” 였다.

1953년 5월 29일 오전 6시 15분 인간이 마침내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꼭대기(8848m)를 밟았다.

그 중인공은 영국 원정대 소속의 뉴질랜든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마 텐징 노르가이  그 나흘뒤인 6월 2일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이 열렸다.  영국 대중들은 열광했다. ‘지는해’ 대영제국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1마일을 4분안에 달리는 것’ 이었다. 1마일은 약 1609m로 육상 트랙 4바퀴를 도는 거리이다.  영국인들은 그 마의 벽도 반드시 영국인이 깨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스포츠를 통해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간이 1마일을 4분 이내에 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당시 생리학자들은 “만약 인간이 1마일을 4분안에 달린다면 곧 심장과 허파가 파열돼 죽을 것” 이라고 단언했다. 뼈 구조상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생리학자들이 한때 “인간은 결코 1마일을 5분안에 달릴 수 없다”고 말한 사실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5분 벽은 1804년 스코틀랜드 지주 로버트 바클리 캡틴(4분50초)에 의해 간단하게 깨졌다.

1825년에는 제임스 메트카프라는 사나이가 기발한 아이디어로 기록을 무려 20초(4분30초)나 앞당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자신이 기르던 사냥개를 뒤따라 달린 것이다  한마디로 사냥개가 최초의 페이스메이커라 할 수 있다.

이후부터 사람들은 형체도 없는 ‘인간 대 시간의 경주‘ 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경주’가 기록을 단축하는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누군가 트랙을 2,3바퀴까지만 전속력으로 앞서 끌어준다면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1954년 4월까지 4분 벽에 가장 근접한 선수는 호주의 존 랜디 였다. 그때까지 4분 3초 이내로 6번이나 결승선을 끊었다.  하지만 그를 끌어줄 페이스메이커가 없었다. 지긋지긋한 2초였다 랜디는 끝내 지쳐 버렸다.

1954년 5월 6일 마침내 1마일 경주가 시작되었다.  브래셔가 첫 번째 바퀴를 57초에 끊었다.  배니스터는 브래셔의 등 뒤에 바짝 붙어  57.5초를 기록했다.  3번째 바퀴까지 이끌어줄 채터웨이도 바짝 따라왔다.  이렇게 하여 배니스터가 마의 4분 벽을 깨고 3분 59초 4 의 기록을 만들어냈다.  배니스터는 극심한 고통으로 정신을 잃었다.

배니스터는 말한다

인간의 몸은 생리학자들보다 수백년은 앞서 있다.  생리학이 비록 호흡기와 심혈관계의 육제적 한계를 알려줄지는 모르지만 생리학 지식 밖의 정신적 요인들이 승리냐 패배냐의 경계사선을 결정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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